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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가 한국땅에 오면 까무러칠게 분명하다.

 
민중의례. 꿀벅지. - 마르크스, 당신은 틀렸소!

로마카톨릭이 중세를 지배하면서 벌인 일들은 많이 알고들 계실 것입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요한 바오로 2세가 사죄하긴 했지만 교황무오론을 시작으로 카톨릭만이 정통종교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짜라는 모토로 유럽을 천년왕국으로 만들었지요.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격언이 있듯이 눈밭에 벌벌 떨면서 - 그것도 맨발로 - 교황에게 용서를 구해야했었고 그렇게 교황에 의해 강력한 권력을 누리게된 성직자들의 타락은 그야말로 목불인견이었습니다. 거기에 교황의 큰아버지의 이름을 딴 성당을 짓기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성경에 전혀 기초하지 않은 '면죄부'라는 신개념 상품을 창출하여 짭짤한 재미까지 올리고 있었지요. 바울과 베드로의 피가 서려있는 로마에 왔다가 술먹고 계집질하면서 면죄부까지 팔아먹는 성직자들의 모습을 보고 개탄한 마르틴 루터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모토를 가지고 종교개혁을 일으킵니다. 루터가 닦아놓은 터전을 바탕으로 북유럽에서는 개신교의 물결이 일고 그 파도는 유럽을 넘어 영국을 거쳐 미국에서 꽃을 피우고 루터나 칼뱅 등은 안중에도 없었을 한국땅에까지 개신교가 퍼지게 됩니다.

하지만, 교황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루터의 후예들은 또다른 교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성경무오론에 이어 목사무오론이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지고 교황이 가졌던 권위보다 더 큰 그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황은 한국 곳곳에 수백, 수천이 있으며 성 베드로나 유스티니아누스가 솔로몬을 이겼다고 의기양양하게 외쳤던 하기아 소피아와 비슷한 모양의 교회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짜르에 대항해 일어났던 러시아 혁명이 결국 스탈린이라는 또다른 짜르를 양산한 것과 비슷한 현상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s. 만약 이 땅에 루터의 뒤를 이을 사람은 루터보다 더욱 힘겨운 싸움을 벌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루터는 한명의 커다란 교황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시스템에 대항했다면 한국의 루터는 적어도 수십명의 교황과 그들이 만들어놓은 커넥션과 시스템, 그리고 신자들 속에 박혀있는 고정관념과 목사의 권위를 인정했다는 오류가 없다는 성경의 권위에 대항해야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by oldman | 2009/10/24 01:48 | 역사이야기 | 트랙백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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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역설 at 2009/10/24 01:52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이 이렇게 무거운 말일 줄이야..
Commented by Esperos at 2009/10/24 02:36
교황 무류지권 교리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때, 즉 공식교리가 된 지 200년이 아직 안 된 마당인데 무슨 소리임? 중세 지나 르네상스 지나, 근대에 들어 발표된 교리임. 오히려 중세 천년 동안에는 공의회와 교황 중 어느쪽이 교회법적으로 상위기관인지 꽤 지리한 논쟁이 있었고, 그래서 마르틴 루터가 초창기에 공의회를 열자고 주장했을 때에도 당시 교황은 공의회로 말미암은 정치적 여파를 두려워하여 공의회 개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음. 카놋사에서 맨발로 벌벌 떨면서 교황에서 용서를 구했던 독일의 하인리히는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를 쫓아내어 교황청 바깥에서 비분강개하며 죽게 만들었음. 또한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건재할 때까지는 교황이 즉위한 다음에도 황제의 제가를 받아야 할 파니었음. 그래서 우리말 번역어인 '교황'은 실제 가톨릭 교회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불필요한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지양해야 하며, 오히려 좀 더 고대적인 표현, 즉 '로마 총대주교'가 더 적절함.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9/10/24 08:29
엇! Esperos님 오류정정하세요.
그레고리오 13세는 현재의 그레고리오력을 제정, 반포한 분이고, 카놋사의 굴욕은 바로 그레고리오 7세였잖습니까.
Commented by Esperos at 2009/10/24 20:02
아차, 그런 실수를 (___)
Commented by 날림 at 2009/10/24 04:43
야고보서를 제대로 읽고 이해하며 그대로 살면 지금 같은 사태는 최소화 됬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Commented by 사론왕필 at 2009/10/24 06:49
목사무오류설? 그런 건 개척교회에서 일어난 교회, 장로교가 아닌 교회에서나 있는 일이지...

장로교회라면 목사무오류는 고사하고 목사가 신도와 장로 눈치 안 보면 자리보전도 안 된다.


근데 이 장로교회가 한국에서 가장 다수파. 교회 안다닌다는 게 티나네 이거.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9/10/24 08:26
그 장로교, 그것도 최다라는 예장 통합 교회에서도 그런 일들이 종종 벌어집니다. 반대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양쪽 다 경험해봤음)

Commented by ㅇㅇ at 2009/10/24 07:52
교황이 그리 절대권력의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은 Esperos님이 잘 지적해주셨고...

전 주인장분께 '루터'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기를 권합니다.

말이 종교개혁이지 그 사람 손에 죽은 사람 수만 해도....어휴.
Commented by Linesys at 2009/10/24 09:34
오류는 윗분들이 잘 지적해주셨고...

한국교회의 최대 문제점이 목사무오류설이라는데는 참 공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니 나와 성관계를 하면 모든 죄가 씻겨진다" 라며 강간하는 목사나 그 말 믿고 고스란히 당하는 여자들을 보면 가끔 교회다니는 사람은 생각이 없는걸까 싶어요.
Commented by 작가 at 2009/10/24 10:09
닥치고 장로들과 실업인선교회 애들이 짱임.

목사 좆까! 우린 돈이 있다고!

깔깔깔!!!
Commented by 루터 at 2009/10/24 10:13
를 비롯한 개신교 집단의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세속 세력인 부르주아와 귀족 제후 계급의 지원과 용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크나큰 종교 세력이었던 교회가 가진 경제/사회/정치적 이권을 빼앗아 자신들의 이익을 넓히고자 했던 그들에게 루터 같은 종교 개혁가들은 이용해 먹기 좋은 선전관이었습니다.

직업소명설이나 고리대금 합법화 같은 친 자본주의적인 교리 역시 세속 지배 세력의 입맛에 맞았구요. 근대의 자연법이 그러했듯 개신교 사상이나 교리들은 결국 근대 지배계급의 입지를 넓혀주고 확고히 하는데 일조를 했고 그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종교 세력은 물론 세속 세력의 권위마저 무너뜨리고자 했던 농민항쟁은 잔혹하다고 할 만큼 철저히 분쇄되었습니다. 루터 역시 농민의 반란은 철저히 제압해야 한다고 했구요.

루터가 한국 땅에 오면 까무러치기는 커녕 자본가들로부터 열렬히 환영받을 것입니다. 오히려 무산민중이 까무러칠 것입니다.
Commented by 少雪緣 at 2009/10/24 11:26
저는 종교법인의 일반법인화를 거론하는 정치자가 있으면 무조건 지지하고 볼겁니다. 세금도 안내는 하느님의 아들따위 사단마귀와 다를게 뭐람.
Commented by 마노 at 2009/10/24 12:17
루터는 몰라도 예수가 오면 까무라칠 듯... 땅을 치며 후회하지나 않을까 걱정이군요.
Commented by Urthona at 2009/10/24 13:47
루터 자체가 나쁜놈이라고 보여서 와봤자 개찐도찐이라고 보는데...

루터의 종교개혁은 자신이 교황에 맞먹는 지위를 지니기 위해, 바티칸이 성베드로 성당을 건축으로 인해 세금압박을 받던 독일귀족들을 이용한것에 지나지 않죠. 에라스무스를 여러번 찾아가 도움을 구했지만 매번 거절당하자 무단복제까지 하면서 농민들에게도 만인사제설 만인평등설에 입각해서 너님들도 세금 깍아줌이라고 구라치고 다니면서 결국 성공했잖아요.

그런데 성공이후에 태도가 싹 바뀌었던걸 생각하면 으익! 직접 농사짓고 살기는 싫었던 듯 싶음. 카톨릭 사제들이 가지고 있던 특권들을 그대로 유지한채 이것저것 다 받아먹었죠. 다른 종교해석 역시 거부하고 이단, 마녀로 몰아서 화형해버리고 십일조내라고 협박한 사례들을 보면 으악!

만인평등, 사제설을 주장했지만 성공하고 보니 그는 버린것 하나 없이 오히려 골수까지 뽑아먹으며 살았던걸 보죠. 그의 수녀 출신 마누라를 데리고 십일조등을 걷으면서 편하게 먹고사는등 짱 이기적인 인간이었잖음요. 그에게 속았던 농민들이 불평하고 반대운동을 할려고 하자 귀족들을 설득시켜서 다 잡아 죽여된다고 직접 돌아다나기도 했던 인간ㅋㅋ

지금의 예장등의 장로회 모습을 보면 잘한다고 오히려 흡족해 할듯.

뭐, 순복음이나 만민같은 개 사이비들을 보면 황당해 할지는 모르겠네...
Commented by zert at 2009/10/24 16:12
오히려 루터 자체는 혁명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카톨릭 자체의 개혁이라고 할까... 오히려 봉기한 농민들을 진정시키고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지요. 또한 위에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루터의 스폰서는 무지몽매한 농민들이 아닌 영주 및 부르주아들-_-;;
Commented by 스카이호크 at 2009/10/24 19:56
스스로 제사장이 될 생각은 않고 그저 떠먹여주는 것만 받아먹으려하니 그런 거지요.
Commented by 카군 at 2009/10/25 00:26
스스로 양치기가 돼야 하는데 목장 주인 돼서 돈이나 벌어먹을 생각들을 하니 이런게죠. 교황 무오류설을 가지고 루터가 얼마나 까댔는지도 모르고 목사 무요류설을 외치는 꼴이라니. 정말이지 저렇게 하고서도 천국 간다면 전 기꺼이 지옥 갈겁니다.
Commented by Esperos at 2009/10/25 00:43
교황 무류지권은 루터 사후 수백 년 뒤에 선포되었는데요?
Commented by 카군 at 2009/10/25 00:54
루터 시절에도 무오류성 이야기는 있었습니다만'ㅅ'?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회 말씀하시는 모양인데, 무오류성 이야기는 중세시절부터 있었던 이야기입니다=ㅅ= 그걸 다듬어서 공식적으로 공표한건 1870년입니다만, 당장 바티칸 공회에서 나온 이야기는 1300년대부터 나오던 이야기로 기억합니다=ㅅ=
Commented by Esperos at 2009/10/25 04:45
댓글을 '루터가 가톨릭 교리를 깠다' 하는 의미로 해석해서 말이 엇나갔군요. 정식교리 확정 이전과 확정 이후를 가리키는 용어에 차이가 없어서 말이지요. -__-. 성모 무염시태 교리만 하더라도 이미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의견표명을 했을 정도이니, 신학적 논의를 수백 년쯤 지속한 뒤에 정식교리로 선포하는 일은 별로 이상하지 않지요. 이미 가톨릭에서 논의되던 양쪽 주장 중 하나를 루터가 공격했다고 생각하면 별로 이상할 것이 없어야 할 터..........인데 확실히 해야 할 부분이 있군요.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당시에조차도 진통이 극심했던 게 무류지권 선포입니다. 당시 교황아 주교들에게 압력을 행사했으며, 결국 최종선포 때 반대파 주교들이 동참하기를 거부하던 게 당시 교황 무류지권 선포에요. 독일 지역에서는 아예 고 가톨릭이 갈라지기도 했고요. 가톨릭 쪽에서도 몇 년 동안 공의회 결정사항에 동의 못하겠다고 버틴 주교가 있을 정도였어요.

루터 때에도 비슷한 논의가 있던 것 자체는 당연합니다. 대충 천 년 가까이 교회법적으로 누가 최고상급기관인지를 두고 공의회 지상주의와 교황 지상주의가 서로 싸웠는데요, 이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리된 때부터, 적어도 서방교회 내부에서는 필연적으로 예고된 싸움이에요. 불씨까지 따지자면 이미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부터 예고된 문제였어요.

문제는, 최고상급기관이 어디인가 하는 논쟁이 곧 무류지권 논쟁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최고상급기관이 어디인가 하는 것과, 최고상급기관에 무류성이 부여되는가에 대한 논쟁은 성격이 달라요. 물론 최고상급기관이 어디인가 하는 논쟁도 교회론과 관련이 깊은 문제이지만, 거기에 무류성이 부여되는가 하는 문제는 교회론 전체를 담보로 해야만 합니다.

공의회 지상주의와 교황 지상주의간 수 세기에 걸친 싸움은 교황 무류지권 선포로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최고상급기관을 따지던 논쟁과 비교하면 무류지권은 개념이 미묘하게 달라요. 단순히 '최고상급기관이 어디다' 이상의 결론을 내버린 거죠.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당시 반대파 주교들은 교황이 교의적 오류를 범했다 싶은 사례를 골라 반박사례로 사용하려고 심혈을 기울였던죠. 저는 '무류성이 최고상급기관에 부여되는가' 하는 논쟁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고 압니다. 성모 마리아 무염시태 교리도 수백 년간 신학적 논의가 있던 사항으로서 선포한 이후에는 별 반발이 없었는데, 교황 무류지권 교리를 선포할 때는 반발이 강력했죠. 사실 교황 무류지권 교리는 현대 가톨릭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중요 논의대상입니다.


그래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자 묻습니다. 루터가 논의한 바가


교회법적 최고기관이 어디인가에 대한 것인지
무류지권이 교황/공의회 중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것인지
아예 무류지권 자체가 있는가를 논의한 것인지


어느쪽입니까?
Commented by 원생군 at 2009/10/25 23:41
음...,한국교회가 앞으로 나가야 할 길이 험하다는 점만큼은 인정 안할수가 없네요
Commented by 오스왈드 at 2009/11/11 08:21
전 서양교회사를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기독교인은 아님-
중세교회사를 공부하고 있지요
문제는 중세기에 교황 권세가 강했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굉장히 불안한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루터 등장 시기는 지금만도 못한 권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카노사의 굴욕으로 유명한 그레고리우스7세 경우는
의도는 훌륭해도 방법은 무지 잘못되었던 경우이지요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와 루돌프간의 권력 다툼에서 루돌프 편을 들며 개혁을 했습니다
당시는 하인리히가 아니라 이방원이 와도 별 수가 없었을 시기이지요
그 후 루돌프가 몰락하면서 모든 역량을 교황에게 집중 시킬 수 있게 되자 상황은 역전되었습니다
이노켄티우스 시대의 경우는 세속 권력자들이 다 고만고만해서 그렇다할 제재권자가 없기도 했지요
현재의 그래도 힘 좀 있고 발언권 있는 교황의 파워는 트리엔트 공의회를 거쳐 이루어졌지요
공교롭게도 그 시기는 유럽이 기독교화된 시기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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