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06일
러시아, 연해주를 먹다 (2)
러시아, 연해주를 먹다 (1)
네르친스크에서 일시적으로 연해주가 청나라의 강역임을 인정한 러시아는 시베리아와 몽골 사이의 국경 마을인 캬흐타에서 국경협약에 관한 또다른 서약을 맺었다. 그들은 조약에 관한 조건으로 교역과 선교활동, 현지연구에 대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청나라는 이것으로 러시아와의 문제는 일단락된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것은 어허허 오해다..였습니다. 담비털과 같은 교역품을 얻고 팔기위해서라도 러시아인들의 시베리아 진출은 늘어갔고 이 중에서 매머드의 엄니는 인기품목이었습니다. 매머드는 멸종된지 오래인 동물이었으나 시베리아 특유의 추운 기후로 인하여 1만년동안 완벽한 모습으로 보존되어있던 덕분에 그들의 모습과 더불어 엄니도 인기교역품목이 되었습니다. 중국인들은 이것을 약재로 사용했는데 갖가지 질병에 기적적인 약효를 발휘한다고 믿고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기적의 약재료'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나요.

한편 대중국 무역으로 부유해진 시베리아의 도시 이츠쿠르츠에 한 명의 야심만만한 총독이 부임해옵니다. 그 이름은 니콜라이 나콜라예비치 무라비요프(1809 - 1881)이었는데 총독에 부임했던 1847년 당시 38세로 한참 정력적인 나이였던데다 투르크족 및 카프카스족과 치룬 전쟁에서 용감한 군인이라는 명성을 얻었고 툴라 총독으로 일할 때에는 영리하고 정직한 관리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이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다른 것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는데 차르가 '쓸모없는 강'이라고 말했던 아무르 강 문제가 그 중 하나였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아무르 강이 바다로 흘러가기 전에 항해가 전혀 불가능한 웅덩이나 늪으로 흘러든다는 보고서에 근거한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이 주장에 찬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겐다니 네빌스코이 함장같은 사람은 이러한 거대한 강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믿을 수가 없어 항해를 요청하지만 지극히 '상식적'인 그의 상관은 네빌스코이의 요청을 가볍게 무시합니다. 결국 총독 무라비요프의 암묵적인 묵인 하에 상관의 명령을 역시나 무시하고 항해를 시작했고 무라비요프는 극동의 미개척지를 조사한다는 구실로 캄차카에 가서 그를 기다리로 했습니다. 그는 오호츠크에서 출항하여 캄차카 반도를 방문한 뒤 네빌스코이를 만나기 위해 항해를 했는데 그는 2세기 반만에 캄차카 반도에 발을 들여놓은 통치자라는 칭호를 얻음과 동시에 네빌스코이를 기다리면서 또다른 기록도 남기게 됩니다. 그것은 네빌스코이가 성공적으로 항해를 마친 것을 목격한 것입니다. 사실 사할린 섬 최북단은 아시아 본토의 일부로 여겨졌으나 사실은 섬이었고 아무르 강은 항해가 가능할 정도의 강이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보고하는 대상이 총독이라는 사실도 잊고 존칭도 생략했다가 급하게 붙였다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이러한 대발견에 이 정도 불경(?)은 대인배스럽게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발견에도 불구하고 네빌스코이는 명령불복종이라는 이유로 함장에서 일반선원으로 강등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윗사람의 의견을 사사로이 사실인지 아닌지 조사하는 뻔뻔한 짓을 했다는게 그 사유였는데 다행히 차르의 은총으로 그는 직위를 회복되었고 그는 아무르 강 유역에 정착지를 세우기 위해 오호츠크로 돌아갔지만 그는 또다른 이유로 그 강을 항해할 수 없었습니다. 네르친스크 조약에 의하면 아무르 강은 항해가 금지된 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얌전하게 항해하지 않을 네빌스코이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르 강 상류로 항해를 강행하였고 왼편 강기슭에 캠프를 쳤습니다. 1850년 8월 1일 러시아 깃발이 그곳에 펄럭이고 그는 그곳이 도시로 성장하게될 것을 예측하고 그곳에 '니콜라예프스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외무대신 네셀로데의 분노를 샀습니다. 이러한 행위가 청나라와의 분쟁을 유발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랬지만 차르는 한번 올라간 러시아 깃발은 내려가지 않는다며 무라비요프의 편을 들었습니다. 거기에 일련의 국제적인 사건이 무라비요프에게 유리하게 흘러갔습니다. 미국의 페리제독이 1852년 그 유명한 '흑선내항'을 해서 일본의 개항을 요구했고 오스만과 러시아 사이에 크림전쟁이 일어나 영국함대가 시베리아를 공격할 수 있다는 우려하여 무라비요프는 시베리아의 요새들을 강화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캄차카 반도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에 400명의 부대를 보내고 마침 적절한 때에 병력이 도착하고 머지않아 영불연합군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인지경이나 다름없다 생각하여 방심한 채로 공격했던 영불연합군은 뜻밖의 빗발치는 포격에 당황하며 퇴각하였습니다. 결국 동맹군 총지휘관인 프라이스 대령은 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을 하고 이로 인해 미루어졌다가 다시 이루어진 상륙도 격퇴당하고 연합군은 패퇴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성공에 고무된 무라비요프는 또다른 원정을 준비하지만 그는 여기서 중요한 후원자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바로 차르 니콜라이 1세가 1855년 숨을 거둔 것입니다. 그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 알렉산드르 2세는 아버지의 극동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으나 이 시기 무라비요프는 정반대의 행동을 취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르 강 어귀에서의 공격을 예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우려와는 달리 오스만 제국, 프랑스, 영국과 평화조약을 맺었고 그들이 시베리아를 공격할 우려는 덜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중요하게 정리할 사항을 하나 남겨놓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청나라였습니다.
※ 다음 편에서는 19세기 당시 청나라의 연해주에 대한 인식 및 당시 상황에 대하여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1. 지안나 과달루피 著, 이혜소, 김택규 옮김 '중국의 발견', pp.206 - 208
네르친스크에서 일시적으로 연해주가 청나라의 강역임을 인정한 러시아는 시베리아와 몽골 사이의 국경 마을인 캬흐타에서 국경협약에 관한 또다른 서약을 맺었다. 그들은 조약에 관한 조건으로 교역과 선교활동, 현지연구에 대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청나라는 이것으로 러시아와의 문제는 일단락된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것은 어허허 오해다..였습니다. 담비털과 같은 교역품을 얻고 팔기위해서라도 러시아인들의 시베리아 진출은 늘어갔고 이 중에서 매머드의 엄니는 인기품목이었습니다. 매머드는 멸종된지 오래인 동물이었으나 시베리아 특유의 추운 기후로 인하여 1만년동안 완벽한 모습으로 보존되어있던 덕분에 그들의 모습과 더불어 엄니도 인기교역품목이 되었습니다. 중국인들은 이것을 약재로 사용했는데 갖가지 질병에 기적적인 약효를 발휘한다고 믿고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기적의 약재료'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나요.

<내가 무라비요프>
한편 대중국 무역으로 부유해진 시베리아의 도시 이츠쿠르츠에 한 명의 야심만만한 총독이 부임해옵니다. 그 이름은 니콜라이 나콜라예비치 무라비요프(1809 - 1881)이었는데 총독에 부임했던 1847년 당시 38세로 한참 정력적인 나이였던데다 투르크족 및 카프카스족과 치룬 전쟁에서 용감한 군인이라는 명성을 얻었고 툴라 총독으로 일할 때에는 영리하고 정직한 관리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이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다른 것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는데 차르가 '쓸모없는 강'이라고 말했던 아무르 강 문제가 그 중 하나였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아무르 강이 바다로 흘러가기 전에 항해가 전혀 불가능한 웅덩이나 늪으로 흘러든다는 보고서에 근거한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이 주장에 찬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겐다니 네빌스코이 함장같은 사람은 이러한 거대한 강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믿을 수가 없어 항해를 요청하지만 지극히 '상식적'인 그의 상관은 네빌스코이의 요청을 가볍게 무시합니다. 결국 총독 무라비요프의 암묵적인 묵인 하에 상관의 명령을 역시나 무시하고 항해를 시작했고 무라비요프는 극동의 미개척지를 조사한다는 구실로 캄차카에 가서 그를 기다리로 했습니다. 그는 오호츠크에서 출항하여 캄차카 반도를 방문한 뒤 네빌스코이를 만나기 위해 항해를 했는데 그는 2세기 반만에 캄차카 반도에 발을 들여놓은 통치자라는 칭호를 얻음과 동시에 네빌스코이를 기다리면서 또다른 기록도 남기게 됩니다. 그것은 네빌스코이가 성공적으로 항해를 마친 것을 목격한 것입니다. 사실 사할린 섬 최북단은 아시아 본토의 일부로 여겨졌으나 사실은 섬이었고 아무르 강은 항해가 가능할 정도의 강이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보고하는 대상이 총독이라는 사실도 잊고 존칭도 생략했다가 급하게 붙였다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이러한 대발견에 이 정도 불경(?)은 대인배스럽게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발견에도 불구하고 네빌스코이는 명령불복종이라는 이유로 함장에서 일반선원으로 강등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윗사람의 의견을 사사로이 사실인지 아닌지 조사하는 뻔뻔한 짓을 했다는게 그 사유였는데 다행히 차르의 은총으로 그는 직위를 회복되었고 그는 아무르 강 유역에 정착지를 세우기 위해 오호츠크로 돌아갔지만 그는 또다른 이유로 그 강을 항해할 수 없었습니다. 네르친스크 조약에 의하면 아무르 강은 항해가 금지된 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얌전하게 항해하지 않을 네빌스코이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르 강 상류로 항해를 강행하였고 왼편 강기슭에 캠프를 쳤습니다. 1850년 8월 1일 러시아 깃발이 그곳에 펄럭이고 그는 그곳이 도시로 성장하게될 것을 예측하고 그곳에 '니콜라예프스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표시된 곳이 니콜라예프스크>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외무대신 네셀로데의 분노를 샀습니다. 이러한 행위가 청나라와의 분쟁을 유발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랬지만 차르는 한번 올라간 러시아 깃발은 내려가지 않는다며 무라비요프의 편을 들었습니다. 거기에 일련의 국제적인 사건이 무라비요프에게 유리하게 흘러갔습니다. 미국의 페리제독이 1852년 그 유명한 '흑선내항'을 해서 일본의 개항을 요구했고 오스만과 러시아 사이에 크림전쟁이 일어나 영국함대가 시베리아를 공격할 수 있다는 우려하여 무라비요프는 시베리아의 요새들을 강화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캄차카 반도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에 400명의 부대를 보내고 마침 적절한 때에 병력이 도착하고 머지않아 영불연합군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인지경이나 다름없다 생각하여 방심한 채로 공격했던 영불연합군은 뜻밖의 빗발치는 포격에 당황하며 퇴각하였습니다. 결국 동맹군 총지휘관인 프라이스 대령은 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을 하고 이로 인해 미루어졌다가 다시 이루어진 상륙도 격퇴당하고 연합군은 패퇴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성공에 고무된 무라비요프는 또다른 원정을 준비하지만 그는 여기서 중요한 후원자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바로 차르 니콜라이 1세가 1855년 숨을 거둔 것입니다. 그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 알렉산드르 2세는 아버지의 극동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으나 이 시기 무라비요프는 정반대의 행동을 취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르 강 어귀에서의 공격을 예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우려와는 달리 오스만 제국, 프랑스, 영국과 평화조약을 맺었고 그들이 시베리아를 공격할 우려는 덜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중요하게 정리할 사항을 하나 남겨놓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청나라였습니다.
- 계속 -
※ 다음 편에서는 19세기 당시 청나라의 연해주에 대한 인식 및 당시 상황에 대하여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1. 지안나 과달루피 著, 이혜소, 김택규 옮김 '중국의 발견', pp.206 - 208
# by | 2009/06/06 11:53 | 역사이야기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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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러시아, 연해주를 먹다 (3)
러시아, 연해주를 먹다 (1) 러시아, 연해주를 먹다 (2) 너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미 내용을 잊으셨을 분이 많을 법도 하지만 그래도 했던 이야기의 방점을 찍기 위해 달려갑니다. 가려둡니다. 러시아가 연해주를 향해 손을 뻗칠 무렵, 청나라에게 연해주는 단순한 변방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땅이었습니다. 이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청나라를 통치하던 만주족의 발상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문에 이곳에 만주족 고유의 특성을 유지하고자 한......more
윗글 내용의 배경 참 매력적인데...
사실.... 제가 예전에.....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진출 등 하여....천천히 우즈베키 칸국등등이 무너지면서..그 근방에 러시아의 외정 장군들이 총독등으로 나타나는것을 보았습니다.
17세기 카자흐족등의 시베리아 탐험이후...청과 알바진 전투....조약등등을 맺으면서..... 이제 시베리아 지역도 몇몇 총독들이 부임하게 되는데.... 사실 제가 러시아의 영토확장사에서 유명했던 총독, 장군 목록등을 모이고 있거든요...
아무튼 윗글 잘 보았습니다..... 좋은글이니 다시 이전편과 함께 다시 읽어 봐야 겠습니다.
예전 일이 있어 그쪽을 잠깐 봤는데 당시 치고는 제법 크더군요.
사절을 연금하고, 함대를 동원해 초소들을 포격하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