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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해주를 먹다 (1)

 

연해주는 러시아의 극동지방에 위치한 곳으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곳이며 러시아의 부동항 중 하나이자 태평양 함대의 기지가 위치해있는 블라디보스토크가 있는 러시아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지역입니다. 하지만 이곳도 불과 150여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청나라의 영토였습니다. 그렇지만 격동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이 땅은 러시아에게 넘어왔으며 그로 인해 동아시아의 역사는 더욱 세계의 급변하는 정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본인은 어떻게 이 땅이 러시아에게 넘어왔는지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합니다. 불꽃사파리를 개장하면서 처음 시도하는 연재물이지만 잘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1. 중국역사 혹은 한국역사 속의 연해주
이곳은 지역적 특성상 유목민족의 영토였고 더불어 한족(漢族)국가나 한족의 전통을 간직한 국가들의 관심 밖에 존재하는 영토였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역사의 주요무대는 중원이었으며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그곳을 지배하는 자가 패권을 장악한 자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더군다나 지금의 연해주 지방은 물론 만주지방은 중원을 직접적으로 위협할만한 세력이 미약했던 탓에 관심이 극히 적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전통적으로 중화제국을 위협했던 유목민족은 몽골지방에 근거지를 삼았고 중국인들은 오감(五感)을 북쪽으로 집중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주 및 연해주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민족은 숙신(말갈)족이었는데 이들은 주로 고구려에 복속되어있던 유목민족으로 고구려가 당나라에 멸망한 후에는 고구려 유민과 함께 발해를 건국하는 주요민족이 됩니다. 발해가 멸망한 후에는 말갈족은 흩어지고 이들은 여진족이라 불리우며 거란족의 요나라의 지배를 받습니다. 하지만 여진족은 일어나 금나라를 세우고 요나라와 북송을 멸망시키고 중국역사의 주역이 되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지배한 연해주 지방도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후에 금나라를 정복한 몽골제국의 원나라도 연해주 지방을 영토로 삼지만 역시나 부와 인구가 월등한 지역은 중원과 강남지방으로 이 지방은 커다란 관심 밖이었습니다.

이 땅이 점차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명나라 시기부터였습니다. 거대한 동아시아 제국을 건설하기 원했던 성조 영락제는 몽골을 정발하고 남중국해와 인도양 국가들에게 대규모 함대를 파견하는 것도 모잘라 안남(베트남)을 정벌하고 여진족의 영토였던 이곳에도 손을 뻗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현재 만주(滿州) 혹은 연해주로 불리우지만 명나라 시기에는 요동(遼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습니다. 영락제는 여진족 출신 환관 이시하(亦失哈)에게 천여명의 병사와 25척의 대선(大船)을 주었는데 이사하는 송화강에서 흑룡강으로 내려가 하구에 도착한 후 이곳에 누르칸도사(奴兒干都司)를 설치하였는데 이곳에 석비를 세우고 해안 너머 사할린까지 탐험했다고 합니다. 누르칸도사의 경영은 영락제가 죽은 뒤 손자인 선덕제가 계승하였는데 이시하는 다시 병력과 함선과 함께 파견되어 이 원정(?)에 참여하였다는 사실이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현재 명나라의 연해주 경영을 드러내는 유일한 증거가 바로 이 두개의 석비라는 것입니다. 선덕제가 죽고 난 후 연해주는 명 황실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졌으며 그들은 이곳을 근거지로 일어난 만주족으로 이름을 바꾼 여진족에게 정복당하고 맙니다.

한편 중국대륙을 정복한 여진족은 자신들의 발상지인 만주(연해주 포함)지방을 신성시하여 봉금령을 내리는데 이땅에 한족의 이주를 금지하는 법령이었고 이로 인해 이 지역은 광활한 넓이에 비해 사람이 거의 살지않는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땅을 근거지로 살던 만주족들은 중국을 정복한 후에 각자 그 땅으로 흩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러시아인이 이땅에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2. 러시아인과 연해주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나 동쪽으로 팽창을 거듭하던 러시아는 결국 순록과 눈, 툰드라가 대부분인 지금도 무인지경인 이땅을 거침없이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굳이 정치적인 정벌이 아니더라도 담비의 털과 같은 물품을 찾기위해 시베리아땅을 밟는 러시아인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갔고 시베리아땅에는 러시아인들의 도시가 세워졌고 러시아인들은 결국 태평양의 해안가에 까지 이르렀고 만주족이 중국의 정복을 마무리짓던 시기이던 1649년 오호츠크라 불리우는 도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한편 남미의 엘도라도와 같이 퉁구스족들은 흑강(Black River)부근에는 다량의 은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고 잘 자란 밀밭이 있는 다우리엔(Daurien)이라는 지역이 있었는데 이곳을 찾기 위한 원정대가 파견되기 시작합니다. 지금도 혹독한 기후의 도시인 야쿠츠크는 밀없이 10개월을 버텨야했는데 이러한 그들에게 다우리엔은 단순히 흥미거리가 아니라 삶의 동아줄이었습니다. 이곳의 통치자는 포야르코프를 기동대장으로 임명해 110명의 기동대원, 15명의 사냥꾼, 2명의 서기, 1명의 대장장이 그리고 1명의 퉁구스족 안내인으로 구성된 원정대를 꾸려서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원주민을 사냥하여 그들을 먹어가며 버텼지만 결국 절반이 굶어죽었으며 원주민들의 공격이 이어지는 혹독한 여정 끝에 흑룡강을 발견하는데 그 강은 온통 경작지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비바람을 피할 곳을 찾을 수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포야르코프는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항해하여 겨울을 지낸후 봄에 다시 서쪽으로 돌아오는 고행 끝에 3년만에 야쿠츠크에 도착합니다. 이들은 막대한 희생 끝에 엄청난 모피를 가져오지만 그들이 걸어간 여정은 200여년 동안 아무도 걷지않는 길이 됩니다.


<파랗게 표시된 곳을 따라가면 레나강의 물줄기>

엘도라도와 달리 다우리엔은 정말 발견이 되었고 그곳을 찾기 위한 대담한 여정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대담한 사람 중 하나인 하바로프는 레나 강과 그 지류인 올라크마 강을 거슬러 올라갔고 강이 갈라지는 지점을 따라 아무르강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내가 하바로프>

그는 비슷한 시기의 유럽인들처럼 이곳을 약탈하며 정복자 행세를 했는데 다우리엔의 수도 알바진을 점령하여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삼습니다. 후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가 세워질 지점까지 따라내려갔는데 이때 그들은 청나라 군사와 마주쳤습는데 원정대는 그들을 격파하고 그들이 남긴 물자까지 차지합니다. 후에 지원부대가 도착하자 그들은 담비털 등의 귀중품만 가지고 도망갔는데 그들이 차지한 여인들은 강물에 던지거나 야수의 밥이 되도록 숲속에 묶어두는 잔인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도망가지않고 남아있던 부대원들은 성이 날대로 난 청나라 군사의 대응을 견뎌야했는데 그 중에는 조선에서 파견된 부대도 들어있었는데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이 사건을 '나선정벌'이라 부릅니다.
비록 러시아인들은 아무르 강에서는 쫓겨가지만 그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머물게되는데 네르차 강과 실카 강의 합류지점에 네르친스크라는 마을을 세우는데 이곳에서 중국역사상 최초의 국가 대 국가의 조약인 '네르친스크 조약'이 맺어지게 됩니다.

한편 알바진은 이러한 가운데 점차 러시아식 요새도시로 탈바꿈하고 이는 조상의 영토에 불법점거하는 것도 모잘라 불법개조까지 벌이는 짓으로 강희제의 분노를 사게되었고 알바진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려 격렬한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결국 네르친스크 조약이 맺어지는데 처음 청나라가 국경선으로 제시한 곳은 '레나강'이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아무르강을 경계선으로 요구하던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매우 무리한 것으로 평화협정이 맺어지기는 커녕 시베리아를 둘러싼 두 거대제국의 전쟁이 벌어질 참이었습니다.

결국 두 나라의 경계선은 실카강으로 결정되었고 교역도 허가되었지만 그 수는 제한되었고 봉금령은 유효했습니다. 러시아인들의 연해주를 향한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을 뿐더러 앞으로 백여년 후 이땅을 둘러싸고 또다른 분쟁이 벌어질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네르친스크 조약은 그 불을 잠시 잠잠하게 만든 것에 불과했었던 것이었습니다.

- 계속 -


참고문헌

1. 지안나 과달루피 著, 이혜소, 김택규 옮김 '중국의 발견', pp.145 - 149
2. 데라다 다카노부 著, 서인범, 송정수 옮김 '대명제국', pp.91 -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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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dman | 2009/06/02 23:32 | 역사이야기 | 트랙백(1) | 핑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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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카구츠치 at 2009/06/02 23:54
흥미로운 주제네요.
하바로프라는 사람 이름이 지명이 되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선정벌을 조선에 요청할 정도면 하바로프의 병력은 상당했나 보죠?
그 앞번의 원정대가 참혹한 결과를 빚었는데도 그 정도 인력을 모았고 그 병력이 군대와 싸울 수 있을 정도였다면 대단하긴 하네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6/03 00:42
"원주민을 사냥해서"라니, 사람고기를 먹었단 말인가요. 후덜덜;;;

그런데 옥수수밭이라는 표현이 좀 이상한 듯 합니다. 그 시기에 연해주 원주민들이 옥수수를 재배했나요?
Commented by oldman at 2009/06/03 06:49
죄송합니다. 참고서적에 나와있는 오역을 여과없이 적다보니 이런 결과가 벌어졌군요.
아무래도 그 서적에서도 'corn'을 옥수수로만 번역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 맥락상 '밀'이 더욱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지적 감사하며 수정했습니다.
Commented by 불별 at 2009/06/03 02:54
평소에 궁금했던 주제였는데 이런 포스팅을 보니 반갑습니다. 근데 중국이 아니라 러시아의 입장에서 쓰여진 자료는 혹시 없을까요?
Commented by Allenait at 2009/06/03 03:37
나선정벌때 병력을 요청할 정도면 하바로프의 병력은 꽤 많았거나 아니면 상당한 정예 병력일것 같군요.
Commented by 나도사랑을했으면 at 2009/06/03 21:29
지난달 이글루에 간도 관련 것들이 올라왔을때 오올드맨님의 글이 메인에 떠 들어가본후 제 링크에 추가 시켰습니다...

음... 저도 청대에 관심이 많은데.... 오 나랑 같은 생각을 한 분이 여기에도....

물론 간도 관련글은 매우 좋았습니다.


아무튼...중국 관련 역사에 대해 매우 재밌게 읽은것 같습니다.

윗글과 상관없는 내용인것 같네요...... 앞으로도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심슨만화..... 처음엔 잘 몰랐는데...이것이 자주 올라오더라구요....

재밌기도 하고..... 네..그렇습니다.


전 아직 역사에 대한 얘기는 할 수준이 못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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